정기 예배

제목 세 가지 선물   [마 2:9-11]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12.25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동방 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선물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봄으로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참된 선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천여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홀연히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나타나 찬송하였고(눅 2:14), 같은 시각 인근 지역에서는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 구주가 나셨다고 전했지요. 이에 목자들은 예수님을 찾아왔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천사가 전해 준 큰 기쁨의 소식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고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 동방에서 인도하는 별을 따라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입니다.


1.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동방 박사들

마태복음 2장 1~2절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했습니다. 이들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었지만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메시아의 나신 곳으로 인도하는 별을 따라 이동하여 마침내 유대 땅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왔다고 하였지요. 이 말을 들은 헤롯왕은 대제사장과 학자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나겠는지 묻습니다.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선지자의 예언을 찾아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고하지요.
헤롯왕은 이 말을 동방 박사들에게 전하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말합니다(마 2:8). 이는 헤롯왕이 참으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다고 하니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동방 박사들을 속인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이때 동방에서부터 인도하던 별이 다시 나타났지요. 그리고 이들을 인도하다 멈추었는데, 그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였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에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대표하여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동방 박사들을 택하셔서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참된 예물로 황금, 유향, 몰약을 드린 것을 모두가 알도록 역사하신 것이지요. 곧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2.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선물의 영적 의미

첫 번째 선물은 ‘황금’입니다.
‘황금’은 이 땅에서 인간이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한 대로 황금은 우리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것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이상을 드릴 수 있어야 참된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모진 고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셨지요.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며, 주님을 사랑하니 내게 귀한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연보 궤, 곧 헌금함에 넣습니다. ‘렙돈’은 성경에 나오는 화폐 단위로 예수님 당시 그리스의 최소 단위의 동전이며 오늘날로 환산하면 두 렙돈은 몇천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두 렙돈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연보 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칭찬하셨습니다.
당시는 여자가 경제 생활하기 어려웠으니 남편 없이 여인 혼자 생활을 꾸려가기란 지금보다 훨씬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과부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은 부자의 많은 돈보다 더욱 귀하고 값어치가 있었으며, 주님께 드린 영적인 ‘황금’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드린 과부의 마음을 칭찬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가족의 마지막 양식을 드렸던 사르밧 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온 나라가 고통받았고 사르밧 과부에게는 먹을 양식으로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생명줄 같은 이 마지막 귀한 양식을 하나님의 권능의 종 엘리야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않고 기름통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전부, 곧 생명줄과 같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고, 할 수 없는 중에서도 주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고 계십니까? 혹여 내 마음을 전부 드리고 싶은데 마음에 세상 걱정과 부, 명예와 권세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주님께 드릴 마음이 없지는 않으신지요?
내 마음에 세상사랑 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주님께 드릴 마음이 없게 됩니다. 마음을 진리로 채우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할 때 그 마음을 주님께 드린 자녀라 할 수 있지요. 세상을 사랑하며 육으로 채웠던 마음을 비우고 주님으로 가득 채우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선물은 ‘유향’입니다.
‘유향’은 악취를 제거하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향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향을 의미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힘써 전도하고 심방하며 봉사하고 충성하면 그리스도의 향이 발해지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향기는 변화된 마음, 진리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그 마음을 채워 주님을 닮을 때 그리스도의 향이 발해지지요. 이렇게 진리로 변화된 마음으로 착한 행실을 나타낼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해지고, 이것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을 할례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한 말씀처럼 범사에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복을 받습니다.
‘황금’을 드린 성도, 다시 말해 자신의 가진 전부를 주님께 예물로 드린 사람은 심은 대로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향’과 함께 ‘황금’을 드린 사람, 곧 마음을 할례 하며 그리스도의 향을 발하는 사람은 더욱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만약 아름다운 꽃을 보고 ‘참 아름답다!’ 감탄할지라도 그 꽃에 향기가 없다면 무언가 부족하고 온전한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양의 꽃에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까지 있어야 보는 이들의 마음이 더 행복하겠지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중심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함을 보실 뿐 아니라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마음의 할례는 하고 있는데, 시간과 여건이 안 돼서 충성은 힘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분이 계신가요? 이 또한 맞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에 있는 악을 모양까지라도 발견하여 버리는 사람이라면 점점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커집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릴까?’ 힘쓸 수밖에 없지요. 그런 사람이 주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고 기꺼이 드리기를 주저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유향을 예물로 드리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중심이며,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이지요. 힘써 마음을 할례 하여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므로 주님의 위로와 기쁨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 번째 선물은 ‘몰약’입니다.
‘몰약’은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몰약을 예물로 드리는 것은 썩지 않을 마음으로 변함없이 주님께 생명까지라도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한 번 주님을 만나 전부 드리기를 원했다면 그 순간으로 끝나지 말고 평생, 나아가 영원히 변함없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더 깊어지고 간절해져야 하지요. 세상에서도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일로나, 아니면 시간이 지나 그 사랑이 변한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사랑을 받길 원하겠습니까? 그러한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길 바라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고귀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시지요. 그래야 아름다운 천국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신앙인이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까? 이런 변개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선물에 이런 교훈을 담아두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몰약을 주님께 선물로 드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주님을 핍박하던 청년 사울은 빛으로 임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뒤 돌변하여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지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전하기 위해 몸과 마음, 시간과 젊음을 다 바쳤습니다(빌 3:5~9). 그런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핍박이요 괴롭힘이었습니다(고후 11:23~28).
사도 바울은 감당하기 힘든 핍박과 고난이 와도 그 마음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하며 ‘내 생명 바치리라’는 마음으로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고, 결국 순교의 자리에 이르렀지요.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마음, 몰약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함없는 마음을 이루려면 마음에 있는 모든 악의 모양을 발견해 버려야 합니다. 악이 있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다짐한 것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통해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마음을 채울 때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어주시고 또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마치 솟아나는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기쁨과 행복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늘 곁에서 힘과 용기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항상 의의 길로 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황금과 유향, 몰약의 참된 선물을 드림으로 당당히 사랑의 고백을 드리며 주님으로부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 하는 기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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