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예배

제목 응답과 축복의 하나님 (5)   [시 14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3.01.08
응답과 축복을 더디게 하는 입술의 말을 범사에 주의하기 위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응답과 축복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가운데 주어집니다. 곧 여러분이 믿음으로 쌓은 분량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선에 이를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원하는 내용에 따라서 조금만 쌓아도 응답되는 것이 있고 많이 쌓아야 응답되는 것도 있지요.
물론 다시금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생겨서 응답도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행함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입술의 말을 주의하지 않아 응답과 축복을 더디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당치 않은 입술의 말로 인해 믿음으로 쌓은 것이 헐리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믿음으로 쌓아가야 하는데 쌓았다, 헐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간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라는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명과 능력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응답과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

‘파수꾼’이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한눈팔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운다면 항상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온다.’ 했습니다(마 15:18). 마태복음 12장 35절에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여러분이 온 영으로 들어오면 마음에 악이 전혀 없고 선만 가득하기 때문에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절제의 능력도 온전히 임해 있기에 마음에서 자동으로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조절되지요. 때와 장소, 그리고 말을 듣는 상대에 맞게 가장 적절한 말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아직 마음에 악이 남아 있으므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절제 없이 하게 되면 오히려 은혜가 되지 않거나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편에서는 선한 의도로 말했어도 상대는 선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온 영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입 앞에 꼭 파수꾼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2.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는 방법

첫째, 범사에 무익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자신은 물론 듣는 상대에게도 무익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비진리의 말이 무익하지만, 이 시간 예로 드는 것이라도 명심하고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거짓말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에게도 해가 됩니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니 상대에게 해를 끼치게 되지요. 상대가 거짓말을 사실로 믿으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데, 거짓말을 하는 자체가 육체의 일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숨기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동문서답’도 무익한 말입니다. 이는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가리키지요. 동문서답을 하면 질문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답을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질문에 맞는 답을 얻어야 그다음 대화를 진행할 수가 있지요.
동문서답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줄일 수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 속에서 들으므로 동문서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문서답에는 거짓말도 있고, 남의 탓을 하는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하나님 앞에 더 합당치 않지요.
농담이나 세상의 유행어도 성도들에게는 무익한 말입니다. 농담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신뢰가 가지 않으므로 비밀을 나누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은 영으로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농담에는 사실을 부풀린 과장된 말과 전혀 이치에 안 맞는 허탄한 말들도 있지요. 이런 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입니다.
세상의 유행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유행어에는 세상 풍조가 담겨있어서 그런 말을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풍조에 물들게 되지요. 설령 어떤 악의가 담기지 않은 유행어라도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성도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가 무익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말씀하셨지요. 물론 무익한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복하고 회개한 것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내뱉고서 자신도 잊어버린 무익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도님들은 이제부터라도 무익한 말을 내지 않도록 범사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잠 10:19). 어떤 말을 하려고 할 때 이 말이 과연 ‘나와 상대에게 유익한가?’를 꼭 생각해 보는 습관을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유익한 말은 어떤 말일까요?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이 유익한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 믿음을 심어주는 말, 생명을 살리는 말도 영적으로 유익한 말이지요. 특별히 성전 안에서는 항상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며, 믿음을 심어 주는 영적인 대화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분수에 넘치는 말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말한 ‘분수(分數)’란,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교만함으로 마음이 높아진 경우에 분수에 넘치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겸손하게 마음이 낮아진 사람에게서는 자기 분수에 넘치는 말이 나오지 않지요.
분수에 넘치는 말의 예로는 판단하는 말, 정죄하는 말을 들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비방하는 말도 마찬가지이지요.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할 권한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있지요(약 4:11~1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평, 불만, 원망의 말을 낸다면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타는 지옥 불에 떨어질 뻔했는데 구원받아 아름다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왔다 해서 환경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그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옥 불에서 구원받은 큰 은혜를 입었음을 아는 자, 곧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직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떤 일을 이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겸손하여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어떤 일을 맡겨도 감사하게 받으며 순종합니다. 반면 불평의 말, 감사치 못하는 말을 한다면 이는 분수에 넘치는 말이지요.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당시 사회는 처녀가 잉태하면 간음한 것으로 정죄 받아서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동정녀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예수님께 해결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시고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즉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요, 이방인인 이 여인을 개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실망하며 포기하거나 업신여김당했다고 분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했지요.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 앞에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절실했던 딸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았지요. 이런 예들을 통해 여러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과 축복의 길을 깨달으며 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요.” 이런 말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쓰는 습관을 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을 입술로 내면 듣는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흐리고 어둡게 만들지요. 잘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뺏어가며 어깨도 축 처지게 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말은 분위기를 맑고 밝게 만들지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끼게 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하면 안 되던 일도 잘될 수 있지요. 이런 예는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눈앞의 현실을 보거나 부정적인 말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나아갔지요(삼상 17:45~47). 그리고 물맷돌 하나를 던졌는데 그것이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다윗의 믿음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고백으로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출애굽 1세대 중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이 그러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차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온 정탐꾼 중 열 명이 부정적인 고백을 늘어놓았지요(민 13:32~33). 이러한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는 금세 백성 대부분에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생각을 갖게 하고 이어 탄식과 불평과 원망을 하게 하지요.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민 14:7~9). 성도님들은 현실의 문제가 어렵고 힘들수록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된다. 우리와 함께하시면 된다.” 믿음으로 긍정하는 고백을 하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3장 2절에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 했습니다. 이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더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응답과 축복을 받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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