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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결국 바른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궁극적으로는 선이 악을 반드시 이기고 승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선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모든 일을 선 가운데 이루어 가시며, 그 자녀들에게도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권면하시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모든 행실이 선 가운데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어 장사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표적을 목격하였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 달랐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요한 직분을 맡았던 대제사장들은 오히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였지요. 이처럼 선에 속한 사람과 악에 속한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과 행함에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악으로 행한 인물의 대표적인 예로 요압이 등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을 섬긴 군장으로서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뛰어난 장수였으며, 다윗의 큰 신임을 받았지요. 그러나 사울의 집안과 다윗의 집 사이의 전쟁이 있을 때에 화친을 청하기 위해 찾아온 적장 아브넬을 죽입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항복할 의사를 밝히고 화친을 요청하였고, 다윗은 이를 받아들여 평안히 돌려보냈으나 요압이 몰래 그의 뒤를 쫓아가 죽인 것이었지요. 이는 전쟁에서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을 죽인 것은 그가 전쟁 중에 자신을 죽이려고 계속 뒤쫓아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아사헬에게 자신의 뒤를 쫓지 말라고 몇 번이나 권고하였지만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죽인 것이었지요. 요압은 사사로운 개인의 원한과 감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악한 감정에 이끌려 화친을 맺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요셉은 선으로 악을 이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았으며, 마침내 종의 신분에서 애굽의 왕 다음가는 총리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지요. 그리고 훗날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을 용서하고 선대하였으며, 그들의 자녀들까지 돌보며 사랑으로 품어 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말하며, 선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악이 물러가고 선이 임하며, 다툼보다 화평이 이뤄지니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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