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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른 훈육, 바른 사랑
출처 기독선교신문 [칼럼] 조회수 375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은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자녀수는 줄어드는 반면,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습니다. 부모의 권위는 약화되고 올바른 자녀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녀의 잘못을 제대로 훈계하지 못해 각종 비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지요. 심지어 부모와 선생님의 훈계를 거부하거나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잠언 13장 24절에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초달’이란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나 스승이 회초리로 훈육하던 것을 말합니다.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진정 자녀를 사랑한다면 무엇이 잘못인가를 깨우쳐 주고 근실히 징계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녀를 무조건 용서하고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훈계가 필요할 때는 엄히 훈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 상에도 자녀를 바로 양육시키지 못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을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는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하며 말로만 타일렀지요.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을 행하는 자녀들에게 그저 말로만 타일렀을 뿐 엄중하게 바로잡지는 못했습니다.
자녀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소문이 좋지 않으니 아버지로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말로만 훈계하는 것으로는 두 아들의 악한 행실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들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하시며 앞일을 알려주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나이 많고 비둔한 엘리 제사장 역시 그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만일 엘리 제사장이 평소 아들들을 엄히 가르치고,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망하며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도록 훈육했더라면 이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바르고 지혜롭게 훈육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잘못했을 때 감정이 앞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녀를 훈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간에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의와 선으로, 사랑으로 초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감정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본을 보이며 사랑으로 훈육하여 자녀들이 잘못을 돌이키도록 해주어야 하지요.
아울러 부모라 할지라도 잘못 행한 것이 있으면 돌이켜 회개하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선과 사랑으로 훈육을 하며 자녀를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자녀를 더욱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골 3:20-2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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